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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작성일: 2016.12.23 (금)

최종 수정일: 2020.09.15 (화)

2016년 PS를 시작했던 나를 돌아보며

 

 

최근에 제가 어떻게 PS(Problem Solving)를 시작하게 되었고,
PS 공부하면서 얼마나 큰 좌절감 속에서 살았는지 적어보려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스물여섯(2015년)에 코드로 문제 푸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스물 일곱이 되던 올해 2월, 백준님을 만나게 되면서 제대로 PS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홍보글은 아닙니다. ^^..)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옆 연구실 동생이 여름방학 때 Beakjoon Online Judge에서 코딩하는 것을 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재밌다고 풀어보라해서 몇 문제 건드려보기 시작했는데 제 힘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나름 코딩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푸는 속도도 일주일에 한문제 정도 풀까 말까?
그 당시 저는 끙끙거리면 풀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그렇게 몇 문제를 풀고 나니 그 연구실 친구가 종만북(알고리즘 문제해결전략)을 추천해줬습니다.
그래서 바로 종만북을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초반부가 상당히 지루합니다.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PS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책에서 코드가 나오면 모르는 STL 찾고 코드 로직이 어떻게 되는지 한참 들여보다가
결국 하루에 3~4페이지를 나갈까 말까 한 정도였습니다.

 

진도가 나가질 않았어요.

 

저는 DP파트 초입에서 종만북에 손을 뗐습니다.
그 후엔 인터넷이나 주변 지인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 지인 중엔 이 분야를 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400~500문제 정도 푼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친한 친구들도 아니고, 인터넷에 물어보면 답변은 잘 달리지 않았습니다.

 

또 제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뭘 궁금해야 하는지, 어디가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저 상태로 2015년이 다 가버렸어요.
그리고 저는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취업준비든 대학원 준비든 해야 했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1월 중순이 되어서야 위기감을 느끼고 다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BOJ에서 문제를 찔끔찔끔 풀기는 했었는데,
사실 거의 안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쯤 되니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PS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접한 순간부터 정말 중요하고 컴퓨터 관련 전공자로서 정말 꼭 잘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했었거든요.

 

공부할 책은 이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읽어도 진도가 나가질 않았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죠.
그래서 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백준 강의가 있더군요.
근데 너무! 비싸요!
정말 비쌌습니다.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리고 듣자는 결론을 내렸을 땐 이미 1월 강의는 시작한 후였습니다.
2월 강의 시작은 설날 때문에 2월 중순이나 되어야 시작한다더군요.
3월이 되면 학업에 집중해야 할 텐데 라고 또 망설이다가
그냥 강의를 듣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기억엔 1주일에 3시간 강의가 4번 있었고
그게 엄청 많이 할인을 해서 33만원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훨씬 더 비싸더군요.

 

아무튼 그래서 2/14, 처음 백준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 시간에 제 수준이 너무 형편없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그래서 방학이 2주 정도밖에 안 남았지만 남은 시간 정말 열심히 해보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 날부터 눈 떠 있는 동안은 계속 문제만 풀었어요.
자기 전에도 문제 생각하고
눈 뜨자마자 어제 풀던 문제 이어서 생각하고
샤워하면서 또 생각하고
밥 먹으면서 노트북 옆에 두고 풀고
바로 집 앞 카페 가서 하루 종일 노트북과 씨름했죠.
가끔 꿈에서도 푼 적이 있었어요.
정말 머릿속엔 문제 푸는 것밖에 없었어요.

 

문제 풀면서 BOJ 랭킹을 수시로 확인했는데
강의 듣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어떤 문제를 제출했으면
자려다가도 꼭 한 문제를 더 풀었습니다.
첫 강의를 듣는 동안 문제 푸는 걸로 저보다 나중에 자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잠도 하루에 4시간 정도..

 

쉬운 문제 위주로 풀긴 했지만
하루에 5~10문제 정도씩 풀었던 것 같아요.

처음 시작했을 땐 푼 문제 수가 60개 정도였고
강의 듣는 사람 중 가장 많이 푸신 분이 250문제 정도 됐었는데
그렇게 3주가 지나자 400문제가 넘어가면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문제를 푼 사람이 됐습니다~ ^-^/

그리고 그 쯤 부터 강의 듣는 사람들 중 스터디 같이 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스터디를 하면서 BOJ Slack이란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BOJ Slack에서 private channel을 만들어 같이 스터디하는 사람들과 강의 끝나고 문제 풀기 시작했죠.
지금은 코포 끝나면 여러 사람들 모여서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편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2016년 4학년 1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대학 생활 동안 제가 쌓아 올린 거대한 우물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면 할수록 이 우물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BOJ 랭킹뿐만 아니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나이가 어렸고
보통 대학교 1학년이거나 고등학생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뭐하고 살았나'라는 자괴감이 끝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동네에서 조기축구만 하다가 갑자기 메시랑 호날두를 봐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ㅎㅎ)

 

그렇게 좌절감에서 1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이 됐습니다.
이 당시 학기 중에 멘토링 프로그램을 같이했던 동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와 종만북 두 권 다 보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종 목표는 acm-icpc 본선에서 괜찮은 place를 받는 것으로 했죠.

 

방학 내내 그 친구 집과 저희 집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 반을 다 쓰고 나서야 종만북 2권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1,2권 전부가 아니고 딱 2권만 두달 반이 걸렸습니다.

사실 이런 알고리즘 강의를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 중에
종만북을 처음부터 봐서 완독하신 분들도 많은데,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백준 기초 강의를 안 들었다면 절대 종만북을 다 못 봤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아무튼 방학이 끝나고 acm 예선을 봤는데,
보기 좋게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코포도 에메랄드 색을 넘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을 똥색(초록색)에서 보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블루 가는 것을 지켜봤죠.

 

이때 제 다이어리를 보면 우울한 말들 투성입니다.
자괴감이 아주 너무 깊은 곳까지 닿아있었어요.
저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문제만 풀다가 취업준비도 못했고, 대학원 준비도 못했고,
가장 기대했던 acm 대회에서도 대전도 못가보고 탈락한 거니까요.

 

그런데 탈락 이후 1달이 지나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취업이 반드시 인생의 길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대학 졸업 후 취업이라는 게 좋은 결과이긴 하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알고리즘이 비록 대회 나가서 비빌만한 실력은 못되지만
그것 자체로 취업준비가 됐었던 거였어요.

 

합격 이후에는 축하 메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취업엔 생각 없는 것 같더니 언제 준비한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취업에 생각이 없었다기 보단 안될 것 같아 회피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이후엔 참 인생 살만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좌절감도 많이 사그라들었죠.

아직 PS를 공부하면서 제가 원하던 목표를 달성한 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2014년부터 나를 바꾸고자 했던 노력들이 2016년 끝에서 딱히 어긋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PS를 시작하면 대부분 저처럼 자괴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만큼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시작한 지 반년만에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대회 입상도 기대하고 했던 게
또 다른 자만이자 저 자신 스스로를 학대하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저의 2016년을 사시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다음번에는 PS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적어보겠습니다.
(http://plzrun.tistory.com/entry/알고리즘-문제풀이PS-시작하기)